오스트로-비트맥시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보통주류사상의 입장에서보면 공리를 위해 희생하지않는 이기주의자로 보인다.
하지만 오스트로-비트맥시에 입장에서 보는 보편주류국가주의신봉자는 스스로를 소중히 할 줄 모르고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가치를 한없이 후려쳐 헐값에 내주는 호구로밖에 보이지않는다.
Ja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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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Bitcoin HODLer
비트코인이 횡보한다고 지루해하는건 지극히 트레이더적인 생각.
비트코인 차트 보는 것 말고 세상에 할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거 볼 시간에 그냥 세상을 누리는게 수명에 좋단 말이지요.
누가 집권하든 토대가 국가주의인 이상 똑같다.
우린 그저 Stack SATs and HODL.
법을 왜 지켜야 할까?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참 우습고 황당한 질문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는 당연히 '질서 있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 법을 지킨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이를 상식적으로 알고있기 때문이다.
‘무법지대’라는 표현이 시사하듯, 법이 없는 곳이란 권리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혼란의 공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말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헌법과 법률은 과연 정당하게 만들어지고 적용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참 기이한 일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국적과 상관없이 법적 근거에 따라 국민으로 등록된다.
그러면 자동으로 ‘국가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내용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법을 무조건 지켜야 하고,
어기면 나중에 알아보기 전까지는 몰랐을 처벌까지 받아야 한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말이다. 만약 그 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극단적으로는 ‘나라 밖으로 나가라’는 식으로 밀려난다. 이건 실질적으로 반강제적인 복종이다.
물론 갓난아이에게 법 조항을 일일이 설명하고 지킬지 말지 선택하게 하자는건 비현실적이다.
유소년기의 인간은 인지능력이 미약하기에 사회활동에서 민폐를 끼치기 쉽고, 일정 수준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엔 이견이 없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들의 인지능력은 가축과도 크게 다를게 없거나 그보다 약간 앞설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제교환능력이 부족한 미성숙한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지나고 관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 이후, 스스로와 타인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이들은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런 사람들마저 가축처럼 다루려 한다.
모든 권력을 중앙에 몰아넣고, 다수결이나 소수 엘리트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만든 규칙을 강제적으로 적용한다.
수용할 수 없는 규칙 앞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쉽게 무시된다.
'다수가 괜찮다고 했으니 그건 정말 최선인거야 그러니 너도 따라'라는 식의 논리는 정말 최선일까?
나는 그것보다 더 자유롭고 윤리적인 방식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지금의 중앙집중적 법 체계보다 나은 방식은 없을까?
나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제안해보고 싶다.
우선, 유소년기의 인간에 대한 통제는 기존의 법 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책임은 국가가 아니라,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있다.
부모는 마치 자발적으로 펫샵에서 동물을 데려온 사람처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리고 일정 기준, 예를 들어 ‘명제 교환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검증’을 통과한 청소년이나 성인은 완전한 자유인이 된다.
그 이후부터는 부모, 형제, 친구, 혹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등과 계약을 통해 관계를 설정한다.
계약은 자기가 직접 작성할 수도 있고, 신뢰받는 조직에서 제공하는 템플릿을 사용할 수도 있다.
초기의 계약 내용은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담는다. 예컨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절도는 금지” 같은 조항들 말이다.
이 조항을 어길 시 받게 될 처벌과 그 집행 주체도 계약서에 명시한다.
이 계약서는 마치 인증서나 주민등록증처럼 작동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은 계약 내용을 보고 본인들 사업에 해가되진않을지 판단해가며 고객을 받을지 결정할 수 있고,
한번 검증되면 추가 확인은 필요 없다. 이후에는 바로 해당 서비스업체와 새로운 약속을 맺으면 된다.
스스로 선택한 계약이므로, “왜 지켜야 하지?”라는 의문이 발생하지 않는다.
당연한 듯 지키게 되고, 스스로 내린 선택이기에 그 책임도 온전히 본인에게 있다.
심지어 “규칙 위반 시 능지처참형으로 책임지겠다”는 조항이 있다고해도 윤리적 논란 없이 집행할 수 있다.
마치 현실의 법처럼 “솜방망이 처벌”이냐 “과도한 형벌”이냐 논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모든 것이 사전 동의에 기반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질서는 이런 개인 간 자율적 계약이 누적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갈등이 생긴다면 시장에서 검증받은 중재자나 중재조직을 고용해 해결하면 되고,
합의되지 않으면 관계를 끊고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
(혹은 아무런 득도 없는 소모적인 네버엔딩싸움을 사망하는날까지 하거나)
나는 이런식으로 동작하는 비중앙화된 계약 기반 질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정의롭고 질서 있는 사회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믿는다.
시급으로 1만 5천원을 쳐줄테니
회사에 가서 적당히 일하는 척 농땡이 피우라고해도
집밖으로 나가 남들과 낯선 공간에서 억지로 부대끼고 있는게 싫다면서
근로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인간이,
10사토시, 20사토시 받는게 재밌다고 아침바람부터 부리나케 글을 쏟아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새삼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되면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보통같으면 꽤 큰돈이 걸려 있어야 움직일 동기가 생기기 마련인데,
인간이란게 항상 그런건 아니구나라고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아나코-캐피탈리즘이라는 개념을 접하면,
이를 단순히 ‘시장만능주의’ 혹은 ‘시장무적주의’로 오해하고 곧장 폄하하려 든다.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마치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으며
단 한 순간의 실패나 혼란도 없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만능 시스템이라는 전제이다.
하지만 이는 아나코-캐피탈리즘의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아나코-캐피탈리스트들은 시장의 무결함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시장이 겪는 불안정, 실패, 붕괴, 재조정의 과정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지지하는 것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실패를 감당하고 교정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시스템이다.
이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나 강제적인 정책 개입보다 훨씬 더 유기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고통과 실패를 흡수하며, 그 자체로 균형을 찾아간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시장실패’란, 단기적인 혼란이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가격 급등, 공급부족, 특정 산업의 붕괴 같은 현상들 말이다.
그러나 아나코-캐피탈리스트들은 이런 현상들을 일시적인 오류가 아니라, 구조적 조정 과정의 일부로 본다.
오히려 이러한 조정은 비효율적이고 왜곡된 구조가 붕괴되고,
자원이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재배치되는 필수적인 ‘통증’이다.
즉, 이들은 '시장실패'를 재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상화로 가는 길목'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시장은 실패를 인정하고 흡수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다.
국가나 정부의 인위적 개입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을 준 듯 보일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왜곡된 가격 신호는 오히려 더 큰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
시장이 제 역할을 하려면, 실패할 자유도 있어야 하며, 그 실패를 통해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기회도 보장돼야 한다.
아나코-캐피탈리즘은 완벽함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제도보다도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하며, 그 자유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그로부터 배우고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장 넓게 열어두는 체계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진짜 인간적인 질서라고 믿는다.
오늘 올렸던 시장실패 관련 글을 보충한 글입니다.
프라이멀로 잽을 날리기 위해 설정을 찾아봤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답이 없어서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잽을 날릴 수 있게되었습니다.
근데 이게 혼자서 할때는 답이없을정도로 순탄치않았는데
마치 제가 키오스크 앞 노인이 된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네요.
젊어서도 벌써부터 이러면 늙어서는 더 큰일날텐데
항상 디지털 수련/신문물 수련 멈추지않고 정진해야겠네요.
한번 뒤쳐지면 한도 끝도 없어질 것만 같은 이 기분 ㅋㅋㅋ